해외여행/영국

영국국립박물관 The British Museum 3 ( 2014 )

공사돌이 2025. 4. 19. 04:42

이집트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살펴보니,

본 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인 로제타스톤이다.

다음은 인용해 온 로제타스톤이야기

 

. 로제타 스톤의 발굴
높이 114Cm, 너비 72Cm, 두께 28Cm로 검은 현무암 돌판인 로제타 스톤은,

오랜 세월 마모된 체로 방치되어있다가 1799 7 19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시기에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북동쪽 약 56㎞ 지점의 로제타라는 마을에 들어선 나폴레옹 군대는

요새를 짓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던 도중 글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현무암을 발견한 것이다.

발견 초기에는 이것의 가치를 몰랐던 병사들이 빨래판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1801년 영국과의 아프리카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프랑스가 약탈한 이집트 문화재가 영국으로 반출되었고,

 그 이후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프랑스는 이 로제타 스톤의 석고로 뜬 사본을 가져갈 수 있었다.

단단하고 결이 고운 검은 빛 현무암에는 반질반질한 쪽에 각기 다른 세 가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첫째 단 14행은 이집트 상형문자로,

둘째 단 32행은 민용문자(民用文字·상형문자가 세속과 종교에 두루 쓰인 승용문자(僧用文字)로 바뀌었다가

더 단순한 흘림체로 바뀐 것.일반 국민에게 널리 쓰임),

셋째 단 54행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다.

 

. 로제타 스톤의 해독
당시에 이 돌판을 해독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어로 기록된 부분인데,

해독 결과 BC 196년에 제작된 이 돌판에는 당시 열두살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멤피스에 모인 사제들이 왕을 기리는 칙령을 그리스어로 만들어 돌에다 새겨 넣은 것이었다 

두 개의 다른 언어로 기록된 부분도 같은 내용을 담고있을 것으로 유추되었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이 돌을 통해 이집트 유물들에

새겨진 상형문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 해독에 진력하였으나,

오로지 프랑스의 천재 서지학자였던 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만이 해독할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표의문자)만을 표현한다고 보았다.

언뜻 보기에 그림이나 다름없는 이집트 유물에 적혀진 부호들을 그림문자. 즉 기호나 상징으로 보아,

굽이치는 선 3개가 을 나타내고, 깃발이 ()’을 나타낸다고 풀이한 것을 누가 의심하였겠는가.
반면 샹폴리옹은 어쩌면 소리’(표음문자)를 나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믿음(belief)이라는 단어를 벌(bee)과 잎(leaf) 그림을 맞붙여 표기했다는 식으로.

마치 신라의 설총이 한자의 음을 빌어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쓸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샹폴리옹은 로제타 스톤을 조사하면서,

이것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공덕비이므로 상형문자에도 프톨레마이오스가 있을 것이며,

그리스어로 적힌 부분의 프톨레마이오스가 타원형으로 둘러 쌓여 있는 것의 숫자와

상형문자 부분의 타원형으로 둘러 쌓인 부분의 숫자가 같은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리스어 알파벳 자음들에 해당되는 상형문자를 찾을 수 있었다.

샹폴리옹은 1815년 발굴되었으며 제2의 로제타 스톤으로 불리는

필레의 오벨리스크(Obelisk, ‘이집트 역사 앞부분을 참조)를 해독하면서

그의 연구가 옳았음을 증명하였다.

필레의 오벨리스크에는 프톨레마이오스말고도 타원으로 둘러싸인 기호가 또 있었다.

그리스어로 쓰인 글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타원 기호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틀림없었다.

샹폴리옹은 이것과 프톨레마이오스를 나타내는 기호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그는 두 단어에 다 나오는 기호들을 찾았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두 단어에 다 나오는 발음기호는 P,O,L이니,

그 기호들이야말로 P,O,L을 소리내는 발음 기호임에 틀림없었다. 두 번째 성공이었다.
그 후 1822 914일 샹폴리옹은 27개나 되는 파라오()의 이름을 해독함으로써

이집트 상형문자의 음가(音價)를 다 밝혀냈다.
그날 아침까지 그는 파라오 이름 25개를 풀었다.

마지막 남은 2개를 놓고 씨름하던 그에게 점심 때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SS M까지 풀고 나서 문득 콥트어에서 태양신을 Ra()라고 하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MSS 앞에 RA를 놓고,거기에 이집트어에서 가끔 생략되는 모음 E를 집어넣자 RAMSES가 되었다.
, 이것은 저 유명한 람세스 대왕의 이름이 아닌가.
곧 이어 토트메스왕의 이름도 풀렸다. 

리하여 샹폴리옹은 마침내 이집트 상형문자를 푸는 기본 원리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보다 닷새 앞서 그는 132개 문자로 이루어진 상형문자 알파벳을 발표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하나였다.

연구실에서만 지낸 샹폴리옹이 마침내 이집트를 탐사한 때는 1828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기의 상형문자 풀이가 옳음을 확인했다.

멤피스의 폐허에서 그는 각각 다른 시기의 건축물들을 한눈에 구별했다.

사카라에서는 오노스라는 왕의 이름을 발견하고 즉시 초기 이집트시대에 속한다고 정확하게 연대를 짚어냈다. 

한 서지학자의 노력으로 수천년간 베일에 쌓여있던 인류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 문명이 밝혀진 것이다.

인류최초 문명의 비밀을 간직한 이 작은 돌판에 그토록 집착하는 영국이 이해될 만하다.

샹포리옹은 살아서 로제타 스톤의 원판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로제타 스톤은 영국 외로 반출된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것은 샹폴리옹의 추모제때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2200년간 말없이 묻혀있던 하나의 돌판과, 비록 죽은 후이지만 그것을 알아본 천재 서지학자의 만남….

그 순간을 상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